미니멀리즘과 아르테 포베라
미니멀리즘은은 1960년대 팝아트와 거의 동시대에 등장하여 전개되었으며, 명칭 그대로 최소화된 형태와 최소화된 내용을 가진 미술 경향입니다. 이들도 팝아트와 같이 추상표현주의나 앵포르멜 미술의 예술지상주의와 과도한 정신주의를 비판하였는데, 팝아트가 새로운 현실인 대중문화에 눈을 돌렸다면 미니멀리즘은 예술을 사물화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갔습니다. 회화에 있어서는 행위적인 추상과는 전혀 다른 방식의 기하학적 추상이 미니멀리즘과 맞물려 전개되었는데, 이러한 경향은 후기화학적 추상, 또는 하드 에지라고 불립니다. 캔버스의 단단한 가장자리에 의해 화면이 구분되고 시원하고 단순한 색채를 사용한 이들의 작품은 캔버스의 형태 그 자체를 강조하여 전체와 부분의 분리가 불가능한 완전히 평면적인 화면을 만들어냈습니다. 이러한 경향에는 보색과 병치된 색채의 상호작용에 관심을 기울였던 요세프 알버스가 큰 영향을 미쳤고 대표적인 화가들로는 성형 캔버스에 명징한 색채를 사용햇던 엘스워스 캘리와 케네스 놀랜드, 그리고 프랭크 스텔라 등이 있습니다. 그러나 미니멀리즘은 주로 조각을 통해 전개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데, 회화는 태생부터가 환영과 재현성을 배제하기 어려운 데 반해 조각은 사물성을 구현하기에 더 적합했기 때문입니다. 미니멀리즘 조각들은 단순하고 명확한 기하학적 형태를 사용하고 채색을 할 경우에도 공업용 페인트 등을 사용하거나 물질 그 자체의 색채를 노출함으로써 극도로 재현성을 배제하였습니다. 또한 단일한 형태를 선호하고 기본 단위를 반복하거나 좌우 대칭, 순열적 배열을 취함으로써 비예술품과 같은 외관을 띱니다. 저드의 금속 사각형이 줄을 맞추어 배열되는 형태의 작품이나 칼 안드레의 바닥에 길게 늘어선 단위들이 그 대표적인 작품들입니다. 특히 미니멀리즘 조각들은 좌대 없이 놓이기 때문에 관람객으로 하여금 예술적 공간과 실제 공간을 구별하지 않고 관람자의 신체를 포함한 전시 환경 속에서 일상의 사물처럼 경험하게 되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르테 포베라는 1960년대 미니멀리즘과 거의 동시기에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탄생된 미술경향으로, 이 용어가 처음 등장한 것은 1937년 비평가 제르마노 첼랑이 보에티, 파브로, 쿠넬리스, 파올리나, 파스칼리와 프리니 등 6명의 작가들을 ‘아르테 포베라’로 지칭하였을 때입니다. 아르테 포베라는 직역하자면 ‘빈곤한’, ‘비참한’, 혹은 ‘시든’ 예술이라는 뜻 입니다. 아르테 포베라는 테크놀로지에 경도된 미술이나 혹은 소비사회에 종속된 듯이 보이는 팝아트 경향에 대한 반발로, ‘비문명화’의 정신하에 흙, 석탄, 돌, 섬유, 식물, 유리 등의 자연 재료와의 직접적 접촉을 시도하였습니다. 이러한 비문명화의 가치는 이미 프랑스 중심의 앵포르멜이나 미국의 추상표현주의에서 추구되었던 바 있었지만, 추상표현주의나 앵포르멜이 서구 문명을 황폐화시킨 동인이 되는 이성에 대한 반대급부로서의 신체적 행위 등에 주목한 데 반해 아르테 포베라는 일종의 자본주의적 부의 환영에 대한 반동으로서의 비문명화를 추구하였습니다. 편지를 띄우는 등의 기록을 작품화한 보에티와 강철과 흙으로 빚은 도기, 밀가루 등 원재료를 사용해 작품을 제작하는 쿠넬리스, 그리고 부유한 세계에 대치되는 범속하고 빈곤을 상징하는 재료를 사용하여 비판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메르츠 등이 아르테 포베라의 대표적인 작가들입니다.
칼 안드레의 ‘끝’
칼 안드레의 첫번째 피라미드 형태의 조각 작품인 ‘삼나무 소품’에서 칼 안드레는 이미 자신이 동조하고 있던 미니멀리즘 예술의 주요 특성들을 통합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프랭크 스텔라가 ‘검은 그림들’과 ‘성형 캔버스’에서 실험한 기본적 형태의 반복, 그리고 브랑쿠시가 ‘끝없는 기둥’에서 시도한 규격화된 형태들을 꿰맞추는 기법에서처럼, 안드레는 규격화된 크기의 목판을 쌓아 한눈에 전체적인 형태와 물질성이 파악되는 단순하면서도 기하학적으로 대칭을 이루는 조각 형상을 보여줍니다. 1965년에 열린 ‘형태와 구조’를 주제로 한 전시회에 자신의 초기 작품들을 출품한 안드레는 함께 작품을 전시한 도널드 저드, 롤 스윗, 댄 플래빈 같은 다른 미니멀리즘 예술가들과 달리, 가공하지 않은 원 물질을 사용했다는 점과, 바닥에 철판들을 깔아놓은 1975년에 제작된 ‘사각형의 주석’에서처럼 구성 요소들을 수평상태로 놓았다는 점에서 특별한 주목을 받았습니다. 조각 작품은 어디에 위치하고 있는지가 중요하며 보는 이로 하여금 그 주위를 돌며 감상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견해를 갖고 있던 안드레는 정면주의를 배격하는 한편, 조각품이 주변 공간과 하나가 되는 것을 막는다는 이유로 받침대를 사용하는 것에 반대했습니다. 바닥에 50개의 납 벽돌을 줄맞춰 정렬한 ‘끝’은 이러한 개념을 반영하여 제작된 많은 다양한 작품들 가운데 하나입니다. 제목이 브랑쿠시의 ‘끝없는 기둥’을 연상시키는데, 안드레는 “내가 하는 모든 작업은 브랑쿠시의 ‘끝없는 기등’을 공중이 아닌, 바닥에 놓는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여기서 교체가 가능한 벽돌을 사용한 것은 선을 끝없이 연장시킬 수 있다는 무한성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루이 칸의 ‘회화’
루이 칸의 회화에 대한 관념은 그림을 제작하는 행위자체에 대한 분석적 접근이 주된 관심사였습니다. 1967년부터 시작된 초기작들은 추상적 회화의 이론적 표류에 대한 반응으로 제작된 것들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파피에 데쿠페’에서는 세로 줄무늬들이 커다란 종이 위에 풀로 붙여 있고, 그 위에 추상적 개념을 희화하는 십자가들이 그려져 있습니다. 다음 해에 제작한 ‘고무도장’에서 칸은 ‘화가 루이 칸’이라는 어구의 고무도장을 캔버스 전체에 찍었습니다. 거의 기계적인 작업이라 할 만한 과정을 통해 예술적 요소를 제거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이름을 내세움으로써 사회 내에서의 자신의 위치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자 하는 작품의 주제는 전혀 훼손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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